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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바이오미래유망기술의 이야기 - 제5화 "디지털 치료제"편


[바이오로 열어가는 2040년 생명과학 미래사회- “디지털 치료제” 편]
 
 제5화  “생명의 은인”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2월에 발표한 
'2020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수민 박사 어떻게 된거야? 오늘부터 출근 아닌가?”

     중국 상하이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수민 국가생명정보기술원 연구원. 지금은 그녀의 복귀 후 첫 출근 날 아침 8시 30분. 8시에 시작하는 아침 회의가 끝나도록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지각임이 확실했다. 

     “해외 근무 끝나고 철이 좀 드나 했더니, 이거야 원.” 그녀의 담당 ‘사수’ 였던 최영일 박사가 결국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늘 하던 지각이라고 생각하면 별다를 일도 아닌 일. 하지만 직속 상사인 강현 단장은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현은 결국 그녀에게 ‘강제 음성전화’를 걸었다. 

     2030년대를 지나면서, 전화통화가 사람을 직접 옆에서 보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생생해졌고, 일반 음성통화조차 사전에 메시지 등으로 약속을 한 다음 걸 수 있었다. 다만 가족 등은 ‘직통번호’를 이용해 화상 전화도 자유롭게 걸 수 있고, 직장동료 등 업무상 빠른 통화가 필요한 사람은 서로 약속하에 ‘강제 음성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긴급을 요하는 일도 아닌데 직통전화를 거는 것은 사회적인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었다.

     “아. 여… 여보세요.”

     “김수민 박사? 걱정돼서 강제콜을 했습니다. 혹시 어딘가 몸이 안 좋습니까?”

     “단장님. 아. 지금 몇 시예요? 어머. 죄, 죄송해요. 지금이라도 바로 출근을….”

     수민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듯 했다. 입으로는 당장 출근할 것처럼 말하면서도 몸을 가누질 못했다.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날 기운도 없는 듯, 상체를 조금 일으켜 보려다 다시 쓰려지듯 눕고 말았다. 

     “김수민 박사? 수민 씨? 들려요?” 수화기 너머로 풀썩하는 소리마저 들리자 현이 다급하게 물었다.

     “미안해요. 아프진 않은데 계속 기운이 없고… 아 다리가 왜 이러지….”

     “다리요? 팔은 어때요? 열이 나나요? 다른데 어디 안 좋은 곳은 없고요?”

     “괜찮아요. 팔은 조금 뻐근해요. 늦잠을 자서 이러나… 힘이 없어서…. ”

     “휴. 어쩔 수 없지요. 오늘은 푹 쉬고…, 아니 잠깐. 잠깐만요.” 

     현은 통화를 종료하려다 수화기를 그대로 들고 조금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의사가 아니었지만, 일생 생명과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며 살았다. 수민의 증세를 가볍게 보긴 어려울 것 같았다. 말투는 어눌했고, 중증의 근무력증(MG) 증상도 의심됐다.

     “수민 씨. 지금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요. 가지고 있는 단말기에서 HML(건강측정수준) 기능 ‘최대한 허용’으로 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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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시만요…. 켰… 어요….”

     “침대에 ‘메디케이션 오토(MA)’ 연결돼 있죠? 복지 차원에서 연구소에서 전 직원에게 지급한 것. 충전제의 유효기간엔 문제없나요?”

     “예…. 처음 받은 것이 그대로 들어있는데 저는 일을 시작하고 아직 몇 달 되지 않아서….”  

     “오늘은 연구소에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가 연구소 전담병원 의료팀에서 연락할 테니, 조금 있다가 원격 검진을 받으세요.”

     “예… 그런데 저 진짜 많이 안 아픈데요… 힘이 좀 없는 것 빼고…. 조금만 있으면….”

     “말 들어요. 좀.” 

     “예….” 

     현이 답답하다는 듯 큰 목소리로 말하자, 수민은 하려던 말을 삼키곤 다시 베게 속에 힘없는 머리를 내려놓았다.

     MA는 가정용 소형 의료장치다. 2030년경 ‘디지털 치료제’ 개념이 완전히 실용화된 이후, 최근 수년 사이에 등장해 빠르게 보급되고 있었다. 과거 구형 정보단말기(당시엔 스마트폰이라고 불렀다) 등에서는 제한적으로 사용하던, 치료 효과가 있는 ‘응용프로그램(앱)’을 이용하는 ‘소극적 디지털 치료’가 기본적으로 가능하고, 각종 기계장치를 연결하면 전기 및 물리적 자극 을 줄 수 있는 ‘적극적 디지털 치료’까지 모두 가능하다.

     최신형 장치들은 놀랍게도 필요한 실제 약물의 자가 조제 기능까지 갖고 있었다. 화학적 조성을 가진 약물 대부분을 합성할 수 있고, 항체나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약물은 어렵지만, 유전자치료제 등 한정적인 생체물질을 이용한 치료제는 가능하게 되었다. 별도의 ‘원격진료 면허’를 가진 의사는 MA에 처방을 보낼 수 있는데, 암호화 된 디지털 신호를 받아 수 백가지의 저장된 기본 화합물로부터 수십만 가지의 약물을 합성해 낼 수 있고, 수 백 종류의 천연물 라이브러리를 함께 조합하여 최적의 약을 조제할 수 있다. 심지어 최신형 MA에서는 내부에 수소 저장 캡슐과 함께 넣어둔 황, 인, 칼륨 등의 기본 원소 물질을 대기 중의 질소, 산소 등과 반응시켜 거의 무한한 종류의 먹는 약을 그 자리에서 조제해 낸다. 아직은 소수의 부유한 장기 요양환자들이 사용하는 고가 제품이지만 연구소에선 직원 복지 및 사용자 데이터 수집 목적으로 모든 직원들에게 MA를 제공하고 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수민 앞으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병원 의료진이었다. 16K에 달하는 고화질 입체 영상을 이용하면 바로 앞에서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안색이나 피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손으로 만져 보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지만, 적어도 2040년 현재 ‘원격의료는 대면진료에 비해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침대에 누운 채로 이런 고화질 영상전화를 받자니 조금 창피해진 수민은 이불을 바짝 끌어당겼다. 

     “안녕하세요. 오성의료재단 뇌신경외과 과장 김형진입니다. 강현 단장이 꼭 저보고 봐 달라고 하더군요. 일반 내과의사는 놓칠 수도 있다고 하면서. ”

     “아…. 예.”

     “병원에서 개인 단말기로 인증신호가 갈거에요 수락 좀 눌러주세요. 손목에 삽입돼 있는 스마트칩과 침대 옆 MA 상태를 좀 확인해야 해서요.”

     “예…. 잠시만요….”
수민은 기운이 없는지 느릿느릿 움직이며 겨우겨우 의사의 요구에 응하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정상으로 생각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형진은 수민의 손목 칩에서 보내온 기본 생체정보를 들여다보고, 안색과 행동거지를 살폈다. 그러다 결국 눈살을 찌푸리며 작게 ‘쯧’ 하고 소리를 냈다. 눈치가 심상치 않아 보이자 수민이 입을 열었다.

     “저기…. 제가 많이 아픈걸까요?”

     “지금 원격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체온과 맥박, 혈압, 신경전도, 근전도 정도에요. 자세한 건 병원에 오셔서 뇌척수액 검사와 혈청 검사를 해 보아야 단정할 수 있겠지만…. ‘길랭-바레 증후군’이 의심됩니다.”

     “예? 제가…. 왜 그런걸…. 그거 불치병 아닌가요?” 

     “해외에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예. 하지만 저는… 어제… 까지도… 아무런 문제가….”

     “급성으로 생기는 일이 많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고생하셨다고 들었는데. 이게 본래 면역질환이거든요. 그리고 박테리아나 인플루엔자나 코로나 등 소위 감기 계열 바이러스 감염이 트리거가 되기도 해요. 해외에 계실 때 본인도 모르게 감염되셨을 것 같아요.”

     길랭-바레 증후군은 갑작스럽게 발병해 빠르게 진행되며,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운동 신경에 염증이 생겨 차츰 운동기능을 잃어가는 병이다. 결국엔 숨 쉬는 데 필요한 호흡근마저 공격아 숨을 쉬기 어려워지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생각지 못한 통고를 받고 단순히 ‘피곤해서 늦잠을 잤다’고 생각하던 수민은 황당한 기분과 불안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너무 염려하진 않으셔도 돼요.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새 유전자 치료법이 나와 있으니까.”

     “예….”

     “문제는 당장 치료를 시작하셔야 한다는 건데, 우선 급한 처방을 MA로 보내드릴게요. 면역세포의 신경 공격을 차단하는 약입니다. MA로 보실 수 있는 신경 안정 디지털 치료제도 보내드릴 테니 밤에 사용하시고요. 아마 당장 오늘 밤부터 좀 괜찮게 느껴지실 거고, 거동도 어느 정도 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일시적인 거니 아침에 바로 병원으로 나오셔야 해요.”

     ****

     집에서 하루를 쉰 수민은 이튿날 바로 병원으로 출근(?)해야 했다. 석박사 과정 때부터 홀로 살고 있던 그녀는 예상치 못하게 몸이 아플 때가 가장 서러웠다. 병원에 도착한 수민은 필요한 각종 검사를 받고, 입원 수속도 마쳤다. 형진은 일주일 정도는 꼬박 치료를 받아야 하고, 퇴원 후엔 일상생활을 할 수 있지만 완치를 위해 반년 정도 원격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팔에 링겔을 꽂은 채 입원실에 누워야 했지만, 사실 이 정도로도 다행이었다. 현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간 크게 위험할 수 있었다.

     “도대체 단장님은 정체가 뭐지? 어떻게 저렇게 뭐든 다 알고 있는 거야?” 수민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날 저녁.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수민은 현에게 먼저 연락을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우선 사수(?)인 최영일 박사에게 화상 전화를 걸었다. 입원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통화가 연결되자 영일의 뒤편엔 같은 실험실 사람 대부분이 서 있었다. 아마도 전화가 걸려오자 다들 우르르 몰려온 것이 분명했다. 사고뭉치라고 구박하던 동료들도 모두 함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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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전부 다 계시네요. 고마워요.” 수민은 또 글썽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병문안을 가자고 했는데, 다들 ‘몇 십 년 전 문화도 아니고 요즘 누가 병원까지 환자 보러 가냐고’ 해서. 수민 씨 전화 오길 모두 기다리고 있었어요.” 최영일 박사가 말했다.

     “예? 제가 전화할 걸 어떻게 아셨어요?”

     “단장님이 수민 씨가 저녁쯤 전화할 것 같다고 하시던데? 단장님하고 오전에 연락한 것 아니야?”

     “아, 아니에요. 놀랍네요. 단장님이 정말 대단하신 분 같아서요.” 영문을 모른채 갸웃거리고 있는 최영일 박사를 눈앞에 두고 수민은 정말 신기한 일이라는 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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