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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바이오미래유망기술의 이야기 - 제2화 “Cryo-EM 생체분자 구조분석기술” 편

[바이오로 열어가는 2040년 생명과학 미래사회- “Cryo-EM 생체분자 구조분석기술” 편]
 
 제2화  “그와 그녀의 거리”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서 지난 2월에 발표한 
'2020 바이오 미래유망기술(클릭)'에 대해서 10화의 소설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바이오가 열어가는 행복하고 희망찬 미래상 제시를 통해
바이오 미래유망기술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수민 박사 거기서 뭐 해? 당장 이리 못 와? 당신 진짜 일 이렇게 할 거야?”
 
  국가생명정보기술원의 중고참 연구자인 ‘최영일’ 박사는 새내기 연구원 ‘김수민’의 담당 ‘사수’를 맡고 있었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된 연구자를 돕고, 안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알려주기 위해 경험많은 연구자와 파트너로 일을 하는 제도다.
 
  수민이 출근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최 박사는 틈만 나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수민에게 화를 내고는 했다. 2040년대에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최 박사는 2010~2020년대, 국내 대학에 적잖은 연공서열 문제가 남아있던 시기에 소위 ‘태움’을 당해가며 연구실 생활을 한 구태가 성격에 남아있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직장 생활의 인간관계는 과거와 크게 바뀌었다. 21세기 초기만 해도 후배가 자잘한 일을 도우면서 선배의 굵직한 노하우를 전수받는 일이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상하관계가 생겨났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교환의 법칙’을 적용하기 어려웠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막상 후배들이 선배를 도울 수 있는 일은 잡일은 대부분 사라졌다. 대다수의 업종에선 후배들도 굳이 선배가 필요치 않았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일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관리자와 상담을 통해 해결하는 편이 빨랐다. 필요하면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재교육 프로그램도 있었다. 선후배 사이에 서로 주고받을 것이 적으니 상하관계도 자연스럽게 약해져 갔다.
 
  그러나 이공계 실험실은 이야기가 달랐다. 후배들은 여전히 선배가 필요했다. 미지의 영역에서 창의적 연구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경험을 통해 익힐 수 있는 노하우 만큼은 인공지능이나 매뉴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배들은 후배를 받는 것을 매우 귀찮게 여겼다. 어지간한 일은 인공지능을 시키는 편이 좋았기 때문에 귀찮은 교육 의무만 생겨나는 격이었다. 그러니 이공계 실험실에서 만큼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상하관계가 존재했다. 그러니 선배 연구자가 거친 언성으로 화를 내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사고를 가진 건 최 박사 혼자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최 박사가 그런 사람 중에서도 비교적 증세(?)가 심한 사람이라는데 있었다. 그는 상사에게 매우 깍듯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부분이 있어도 일단 상사의 의견을 수긍하고 따르는 성격이었다. 그는 이 엄격한 기준을 자신의 후배에게도 그대로 적용했다. 조금이라도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여겨지면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이런 그의 성격은, 구성원 모두가 자연스럽게 의견을 개진하고 합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데 익숙한 수민의 그것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다.
 
 “김수민 씨. 이번에 들여온 시료를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으로 분석해 보자고 했지요. 자꾸 여러가지 반대 의견을 내놓던데, 알았으니까 일단 분석해 놓으시라고 했고. 기억나요?”
 
 “예…….”
 
 “그런데 왜 아직도 안 돼 있나요?”
 
 “저. 그런데요, 제 생각엔 이 시료는 그보다 다른 방법으로… ” “휴. 왜 그렇게 ‘그런데요’가 많아요. 일단 해보고 안되면 그 상황을 보고하면 되잖아요. 그게 그렇게 어려워?”
 
 “그게 아니라,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잘 이해되질 않아서요.”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군. 지시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업무 불이행에 해당해요.”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말씀하세요. 저는 제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하자는 뜻으로…” “하하. 이 친구 생각 자체가 잘못돼 있네. 당신이 뭔데?” 수민의 이야기를 듣던 최 박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강하게 물었다.
 
 “예? 그게 무슨…….”
 
 “수민씨가 이 연구 프로젝트 책임자야? 스스로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
 
 “됐어요. 하기 싫으면 자기 자리에 앉아있다가 집에 돌아가세요. 내가 할 테니까. 어이. 제니스, 3번 Cryo-EM으로 DX4312번 시료 분석할 거야. 준비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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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박사는 스마트 안경을 고쳐 쓰면서 수민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쓰며 말했다. 제니스는 연구실에서 관리목적으로 사용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이름이다. 곧이어 낭랑한 목소리가 최 박사 책상에 붙어 있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최.영.일. 책임연구원님. 음성 확인했습니다 시료번호 D.X.4.3.1.2. 진행자는 김.수.민. 수습연구원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대로 준비할까요?”
 
  “실험자를 나로 바꿔줘. 김수민은 진행자 목록에서 빼줘.”
 
  지시를 들은 인공지능은 일을 척척 준비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최.영.일. 책임연구원님 진행하에 실험. 자동화 준비과정 시작. 고진공챔버를 가동합니다. 시료동결상태가 양호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실험은 연구자가 수동으로 제어해야 하니 30분 내에 장비실로 이동 바랍니다. 김.수.민. 수습연구원님은 앞으로 이 시료에 대해 단독으로 실험할 수 없습니다.”
 
  실험 준비를 하는 최 박사를 뒤로하고 수민은 불쾌한 기분을 곱씹으며 자기 자리로 쫓겨나듯 돌아가 앉을 수밖에 없었다. 최 박사는 최 박사대로 기분이 언짢았다. 그는 그날 수민에게 더 이상 어떤 지시나 조언도 하지 않은 채 놓아 두었다. 조직에 소속된 사람이라야만 맡은 업무는 일단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지시를 개인적인 판단으로 거스르는 건 간과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른 거였다. 적어도 최 박사 생각에는.
 
  수민의 기분 역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무시를 당했다는 기분이 들어 화가 났고, 한편으로 서러운 기분도 밀려들었다. 머릿속엔 별의별 생각이 다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경력이 부족해서 믿을 수가 없나?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하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나도 박사까지 공부했는데, 왜 내 의견은 들어볼 생각도 안 하는 거지? 말투는 저게 또 뭐야? 이 연구실엔 인권이란 게 없는 건가?’
 
******
 
  저녁 퇴근 시간 조금 전, 수민은 연구단 단장실을 찾아갔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낀 수민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여겼다. 강현 단장은 막무가내로 단장실로 찾아오겠다고 보내온 수민의 메시지를 보며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었다.
 
  “이 친구는 첫 출근부터 지각하더니, 이제는 이틀을 조용하게 못 있는구먼.”
 
  잠시 후 수민이 단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거기 앉으세요. 오늘은 또 어떤 일인가요?”
 
  수민은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은 일을 잘 해 보려고 했다는 점, 자신의 의견은 일방적으로 묵살 당했다는 사실 등을 토로했다. 또 조금만 관계가 있어 보이면 모든 생체 물질 시료를 Cryo-EM으로 분석하라고 시키는 건, 시료의 급속동결 등 복잡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수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은 다소 현기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친구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민 씨.” 현은 일부로 조금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예.”
 
  “우리 연구소가 진행 중인 큰 프로젝트 중 하나로 ‘Cryo-EM 영상 이미지 선진화 사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알고 있나요?”
 
  “처음…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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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yo-EM 영상은 사실 명암이 또렷하지 않고, 잡음도 많아 그렇게 해상도가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20여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해 지금은 ‘생명체 입체 구조 분석의 혁신’이라고까지 불리고 있지요. 왜 그런지 알고 있나요?”
 
  “예. 동일 시료 영상을 다수 획득해서 신호를 평균화 하는 기술 덕분에… 아… 그래서…….” 수민은 뭔지 알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인공지능기술이 보편화 된 건 오래전이지만 실험실까지 도입되기 시작한 건 불과 십수 년 전부에요. 우리 연구소에선 앞으로 Cryo-EM으로 촬영하는 모든 영상의 질을 인공지능을 이용해 큰 폭으로 끌어 올리는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인공지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죠?”
 
  “데이터의 축적…… 아. 나 어떻게 해….” 수민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수민 씨 이야기는 옳은 부분이 있어요. 목표 성과만 내려면 지금 이야기 한 시료들을 일부러 Cryo-EM에 넣을 필요는 없어요. 다른 편한 방법도 많겠지요. 하지만 최 박사는 번거롭더라도 그걸 모두 분석해 연구소가 가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늘리려고 했습니다. 나는 최 박사가 열심히 일한, 아주 착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제가 틀렸나요?”
 
  “단장님이, 옳습니다.” 그러나 수민은 지지 않으려는 듯 다시 연이어 물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저에게는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인 지시만 한 최영일 박사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신입이라고 이렇게 무시를 당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두 사람의 감정적 문제 아닌가요. 나에게 들고 올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제가 두 사람 중에 누구를 더 신뢰할 것 같은가요.”
 
  “…….”
 
  “마음이 상했다. 기분이 나빴다. 그런 감정의 대부분은,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런 시답잖은 거로 그 난리를 쳤지’ 싶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일하는데 그런 감정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
 
  “최 박사의 말투나 행동거지가 오해가 생길 만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나조차도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으니까.” 현은 다시 뒤통수를 긁으면서 연이어 말했다.
 
  “그래도 믿고 따라주세요. 어느 것 하나 수민 씨 안 좋게 할 사람은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수민은 현과 이야기를 나누며 ‘최 박사와 화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시간이 지났을까. 함께 퇴근하자며 그의 부인이자 데이터 팀장인 권하선 박사가 단장실로 찾아 왔다. 주섬주섬 몇 가지를 챙겨 들며 현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요. 큰 고민이나 있는 사람 마냥. 수민 씨 일 때문에 그래요?”
 
  “신입이 속을 안 썩일 리가 있어. 어디나 다 그렇지.” 현이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엔 최 박사랑 같이 있으면 자꾸 부딪혀서 더 시끄러운 것 같던데, 오늘도 연구실 떠나가라 싸우고 했다고요.”
 
  “알고 있어. 그래도 지금은 둘을 붙여 놔야 해. 다시 떼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지금 다소 시끄러운 일이 생기는 건 감당해야지 뭐.” 현은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글 전승민()

삽화 조진호(ING Interactive)

감수김명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기획 및 편집 김무웅남연정(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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